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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시에서 잔인하다고 한 이유는 봄 새싹이 자라나듯 새로워야 할 4월이 그렇지 못하고 예전의 좋았던 시절의 추억만을 떠올리게 해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뜻으로 전후(戰後) 세계의 정신적 황폐함을 개탄한 말이다.
4월은 긴 겨울의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나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초록에 둘러싸이게 되는, 연중 가장 유쾌, 상쾌, 통쾌한 때다. 집에서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각종 봄꽃과 새싹을 만날 수 있는 4월. 하지만, 욕심을 조금 낸다면 더 상큼한 봄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여행도 웰빙이 화두로 떠오른 요즈음, 우리가 자주 마시는 녹차의 수확이 한창인 4~5월의 차밭으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쌍계사 가는 길에는 유난히 차나무가 많다. 특히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에서 신흥마을까지 화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십리 벚꽃길'은 '십리 찻길(茶路)'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차밭의 연속이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고 꽃이 진 자리에 푸른 잎이 돋아날 때면 하얀 세상은 초록세상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차밭으로 알려진 화개 골짜기. 가파른 산비탈에는 어김없이 차나무가 자라고, 골골이 차밭이 자리하고 있다. 가래떡을 줄지어 세워놓은 듯한 차밭의 모습은 어디선가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다. 하동 차밭의 역사는 1100여년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그윽한 차 향기처럼 유서가 깊다.
하동 차밭에는 4월초면 노란기운을 드리운 가늘고 여린 작설(雀舌ㆍ참새의 혀처럼 생겼다는 의미)이 새순을 내밀어 곡우(4월20일) 이전의 우전차(雨前茶) 수확에 농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하동 차밭의 진수를 볼 수 있는 포인트로는 쌍계사 1.7㎞ 전방 신촌리 어귀 언덕을 꼽을 수 있다. 쌍계천과 십리벚꽃길, 다랭이 차밭, 지리산 준령이 한눈에 들어오는 근사한 조망 포인트이다.

하동에서는 해마다 <하동 야생차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5월19일 ~ 22일까지 나흘동안 열린다. 다도 경연, 차 미인 선발대회, 애생차 가요제 등 차를 주제로 한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된다. 지금 SBS에서 방영중인 박경리 대하소설 원작의 드라마 ‘토지’의 배경이 되는 곳도 바로 이곳 하동이다. 연계하여 관광을 하면 좋다.
가는길은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경부(혹은 중부)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를 타고 진주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길을 바꾼다. 순천 방향으로 가다가 하동IC에서 빠진다. 하동읍을 지나 구례쪽으로 약 20㎞를 더 달리면 화개장터이다. 오른쪽으로 쌍계사 가는 길이 나온다. 대중교통은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오전 9시 10분부터 1시간 40분 간격으로 하루 6차례 하동ㆍ화개행 버스가 출발한다. 하동버스터미널(055-883-2662)에서 쌍계사까지 하루 11차례 버스가 왕복한다.

대명사격은 역시 전남 보성이다. 요즘 웰빙 붐을 타고 녹차 관련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는데, 마케팅을 하면서 첫째로 언급하는 단어가 바로 ‘보성’이다. 누구나 보성 녹차라고 하기에 보성산이 아니면 불량 녹차인 것처럼 인식이 될까 염려스럽다.

원래 예로부터 보성은 야생차가 많았으며, 광복 이후 산비탈을 개간, 차밭을 조성해 이제는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만큼 녹차 주산지가 됐다.
보성읍에서 국도 18호선을 타고 율포 해수욕장 방면으로 8㎞쯤 가다보면 봇재에 이른다. 발아래 굽이굽이 펼쳐지는 차밭이 득량만의 싱그러운 바다를 아우르며 온 산을 뒤덮는 형상이다. 봇재 못미쳐 보성차밭의 원조격인 <대한다원>은 활성산 자락 비탈에 조성돼 있으며, 이곳은 지난해 TV에서 본 SK텔레콤 CF의 배경 촬영지로 유명하다.

보성에서도 해마다 녹차에 관한 모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다향제’ 가 열린다. 올해로 31회째인 다향제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유망축제’로 지정됐으며 이번에는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녹차' 를 주제로 관광객과 함께 하는 체험형 웰빙 축제로 개최하기로 했다.

5월 5일 개막하는 보성 다향제는 4일 밤 전야제인 '다향의 밤'을 시작으로 다신제, 차잎 따기 경연 등 이벤트와 함께 일림산 철쭉제, 녹차 웰빙 체험, 천년고찰 대원사 전통문화체험, 전국 패러글라이딩 대회, 국궁대회, 게이트볼대회 등 각종 경연 대회들도가 5월 8일까지 계속된다. 특히 전국 차요리 경연, 국제 명차 선정 한국 출품작 예선, 한,중,일 차문화 교류전, 궁중 규방 생활 다례시연, 차와 우리 옷 바르게 입기 발표회 등 다양한 차 문화행사도 이어진다. 또 산신제와 가족등반대회, 산사랑 리본달기, 통일염원 녹차시음과 녹차떡 나눔 한마당 행사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가장 많이 찾는다는 섬 제주도에도 이름난 차밭이 있다. 화산섬이라 녹차같은 것이 잘 자랄까 의심스러울지 모르나 지리산, 보성 못지않게 싱싱한 차밭이 면적도 상상외로 광활하게 자리잡고 있다. 연 평균 1300mm 이상 비가 내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부서져 생긴 제주도 토양은 차의 재배에 적합하다고 한다.
제주의 대표적 다원으로는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 서광다원을 꼽을 수 있다. 16만평의 드넓은 차밭에 100만 그루의 차나무가 지평선을 이룰 만큼 펼쳐져 있어, 사계절 싱싱함이 넘쳐 흐르는 공간이다.

특히 평지에 가까운 구릉에 다원이 조성돼 있어 이른 아침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은 채 끝간데 없이 펼쳐진 차나무밭에 들어서면 실로 싱그러움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수백개의 스프링쿨러로 동시에 물을 뿌리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서광다원의 명물은 단연 녹차 박물관 '오설록(www.sulloc.co.kr)'이다. 차의 역사와 제조과정을 알 수 있는 전시관, 전시 판매장, 전망대 등을 갖춘 문화공간이다.

이곳은 풍광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단골 코스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차나무가 마치 융단의 물결처럼 눈앞을 아른거리게 만든다.
가는 길은 제주공항에서 내려 서쪽으로 95번 국도인 ‘서부산업도로’를 타고 서귀포쪽으로 40분가량을 가면 ‘서광 다원’ 이정표가 나타난다.